“ 꼼 싯노렌 경 풍당풍당 물씨듯 썸시냐?”
“아빠, 할머니가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좀 있다고 펑펑 물 쓰듯 하지 말고 아껴 쓰라는 이야기야.”
“멘도롱 때 호로록 드르키라.”
“??”
“식기 전에 빨리 마시라고.”
제주시 노형동 백록초등학교 1학년 허윤지양과 허양의 아버지·할머니, 3대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3대는 모두 제주에서만 줄곧 살아왔지만 70대인 할머니와 손녀는 통역인 아버지 없이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허양이 서귀포시 법환동에 사는 할머니 집을 찾을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허양에게 할머니의 언어는 외국어나 다름없다.
길거리에서 만난 제주 중앙중학교 1학년 오지혁군도 “할머니 말은 10%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한다. 아빠가 해석을 해줘야 한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표준어를 쓰기 때문에 제주어를 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소멸위기 4단계
“제주어는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는 상태나 다름없다. 제주어를 쓰는 70~80대 노인들이 사라지면 제주어도 사라진다.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주어의 생존이 좌우된다.” 지난 6월 26일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주간조선이 제주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에 출간돼 화제가 된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글항아리)라는 책으로 니컬러스 에번스라는 호주의 언어학자가 제주어를 비롯해서 세계의 소수 언어에 대해 쓴 책이다. 매일 죽어가고 있는 소수 언어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탐사보고서이다. 에번스는 책에서 “세계 언어의 수는 10년 내에 50%로 줄어든다. 6000여개의 언어를 통해 내려온 사고의 다양성이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제주어는 지난 2010년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위기 언어 4단계로 분류됐다. 유네스코는 지구상의 사라지는 언어를 5단계로 분류하고 있는데 5단계는 이미 소멸된 언어가 속한다.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제주어의 소멸은 단지 언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전통과 문화, 제주어로 전해져 오는 수많은 지식과 신화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에 사는 김순이 시인은 “제주어로 남아있는 신화가 1만8000여개에 이른다. 한국에 남아있는 신화의 대부분이 제주 신화일 거다. 신화를 가진 민족과 가지지 않은 민족은 위상이 다르다. 그리스를 봐라. 신화를 앞세워 신들의 자손이라고 큰소리치지 않나. 제주어가 사라지면 큰일이다”라며 걱정을 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왜 제주 방언이 아니고 ‘제주어’인가. 20여년 동안 제주 구석구석의 제주어를 수집하고 ‘제주말 큰사전’을 펴낸 송상조(70) 박사는 “제주어는 훈민정음의 아래아가 살아있는 것뿐만 아니라 표준어에 없는 때가림소(시제) ‘ㅇ, ㄴ’을 활용한 제주어만의 문법을 보여주고 있다. 언어 체계 자체가 다르다. 학자들을 중심으로 아예 다른 언어이니 제주어로 부르자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져오다 2007년 제주도에서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안이 만들어지면서 제주 방언이 아닌 ‘제주어’가 공식화됐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제주어의 사망’을 단언했다. “제주어는 결국 없어질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말이 없다. 언어도 생명이 있는데 다음 세대가 없다. 대책을 세워야 할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도 관심이 없다.”
실제로 제주어가 유네스코 소멸위기 언어로 분류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호텔 직원 김명석(33)씨는 “성산 일출봉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주어가 소멸위기 언어라는 것은 몰랐다. 관광객이 많고 외지 유입 인구가 많다 보니 소통을 위해 표준어를 사용하게 된다”고 답했다.
왜 제주어가 사라지고 있나
제주어보전회의 제주어선생 육성 교육과정. 지난 5월부터 3기생 6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제주어보전회 허성수(69) 이사장은 “표준어 교과서로 공부를 하다 보니 학교에서 제주어 사용을 금지했다. 선생님이 교단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면 장학 지도에서 주의를 받았고 학생들도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제주 사투리는 저급한 언어라는 인식이 생기고 사용하지 말아야 할 언어가 됐다. 제주어에 아이들이 흥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 선물도 주고 만화도 만들어보고 별짓을 다하지만 반응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오창순(53·서귀포시 의제21협의회 사무국장)씨는 “아직 제주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80대 이상에서 학교 다니지 않고 지역에서 이탈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 70~80대 노인들도 요즘엔 손자들하고 소통하기 위해 표준어를 쓰려고 한다. 언어 사용 인구가 전체 인구의 5% 이상이면 소멸되지 않는다고 보는데 제주어는 현재 1%로 보고 있다. 현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도 해야 하는데 돈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나서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송상조 박사는 제주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도 결정적 이유라고 말했다. “제주도가 못살던 시대엔 제주도민인 것을 숨기고 싶어했고 사투리 쓰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다. 제주어는 표준어와 다른 언어가 아니라 잘못된 언어라는 인식이 뿌리 박힌 것이다. 취업할 때 제주어를 잘하면 우대해줘도 부족할 판에 사투리를 쓰면 떨어진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제주어를 더 홀대한다. 교육을 시키려 해도 제주어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이 없다. 정말 큰일이다.”
제주어보전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경남(37)씨는 “사투리를 쓰다가도 외지인을 만나면 의식적으로 표준어를 쓰게 된다. 모드 전환이 순식간에 되는 것이 우리도 놀랍다. 우리끼리도 사투리를 쓰면 좀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당했다. 우리 세대는 제주어에 아예 관심이 없다. 친구들 만나서 제주어 보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이상한 놈 취급하더라. 오히려 제주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표준어 중심의 획일적인 언어정책으로 언어의 다양성이 무시되고 지역방언의 가치를 폄하한 것은 비단 제주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주어 살리기에 나선 사람들
제주어의 소멸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 중에는 제주와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도 있다. 재일동포 3세인 김정태(53)씨는 “제주어를 위해 인생에서 1년을 떼놓자”는 생각으로 일본에서 다니던 무역회사도 그만두고 올해부터 제주시에 머무르고 있다. 김씨는 “제주어를 남길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안 남았다. 75세 이상 제주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5000명에서 1만명이라고 한다. 지금 열심히 살리면 그들을 통해 아래아가 소실된 음가들을 살려낼 수 있다”면서 “독창성을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나 제주어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녹음기를 2개씩 들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제주어를 녹취하고 다닌다. 내년이면 도쿄로 돌아가 대학원에 진학해 ‘제주어에 남아있는 일본어’를 주제로 논문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제주어로 하는 인터넷 방송도 구상하고 있다.
제주어 소멸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최근 들어 보전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불과 4~5년 새의 일이다. 국립국어원 등이 나서 제주어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제주도에서도 제주어 보전·육성을 조례로 제정하고 제주어 말하기 대회 등에 연 예산 1억여원을 지원하고 있다. 2007년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5개년 계획이 올해로 끝나고 내년부터 새로 5개년 계획이 시작된다. 제주도는 ‘제주어 표기법 통일’ ‘제주어생활사전’ 발간을 추진할 예정이다.
제주도청에서 제주어를 담당하는 문성종 주무관은 “제주어에도 방언이 있다. 과거에 제주도 동쪽과 서쪽은 물론 동네별로 교류가 없다 보니 지역별로 전혀 다른 언어들이 많다. 표기법도 달라 정비 작업이 필요하다. 표준어를 제주어로 바꾼 사전도 만들어야 하고, 활동하는 단체들을 통합해서 목소리를 키워야 하고, 교육 과정에 제주어도 넣어야 한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문제는 시간과 예산이다. 제주어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 10여년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민간에서 제주어를 확대 보급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2008년 설립된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이다. 제주어보전회는 제주도청과 함께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올해 3회째 열었고 격월간으로 소식지 ‘덩드렁마께(넓은 돌 위에서 짚을 두드리는 방망이)’를 발간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제주어 선생 육성 교육’이다. 교육이 제주어를 죽였지만 제주어를 살릴 수 있는 것도 교육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학교별로 방과 후 수업으로 ‘제주어’ 시간을 만들고 특별활동 시간에 제주어 동영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문제는 제주어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다.
제주어보전회는 제주어 교사 양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 5개월 과정의 제주어 교사 육성 교육을 시작했다. 지난 5월에 3기 과정을 시작, 매주 수요일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 과정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고 한다. 2기 때에도 100여명이 몰려 50여명이 수료했고 올해는 인원 제한을 해 60여명이 수강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교육현장을 찾았다. 60~70대가 많았지만 30대, 40대도 몇 명 눈에 띄었다. 수강생인 김연희(46·주부)씨는 “여기 와서 보니 내가 쓰는 제주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많더라. 제주어가 구술언어이다 보니 발음과 표기도 다르다. 제주어는 제주도만의 문화유산인데 우리가 써야 보존될 것 아닌가.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일부러 제주어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데 아이들은 사투리를 쓰면 친구들이 놀린다고 안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청강생으로 참석한 재일동포 김정태씨는 “외국의 경우 모국문화를 지키기 위해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키운다. 제주어도 교육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의를 맡은 강원희씨(소식지 덩드렁마께 편집위원장)는 “이미 죽은 말이 엄청 많다. 그나마 제주어 쓰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던 것이 제주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위상이 올라가면서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시로, 노래로, 연극으로
제주도 출신 탤런트 고두심씨의 옛날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1969년 3월호에 ‘제주의 해녀’로 소개됐다.

‘이녁 가슴 소곱에 들어가 보젠/ 욕심이영/ 미움이영 손 끈 잡아둠서/지웃거렴신디/이녁 가슴 소곱엔/고운 꽃덜이 만발
생이라(중략)’.
제주어로 시를 쓰는 황금녀 시인의 ‘이녁 가슴 소곱에’란 시이다. 표준어로 바꾸면 ‘그대 가슴속에 들어가 보려/ 욕심이랑/ 미움이랑 손 굳게 잡으면서/ 기웃거리는데/ 그대 가슴속엔/ 고운 꽃들이 활짝 핀 모양이네(중략)’이다.
시를 통해 제주어를 알리는 황금녀 시인처럼 제주어 살리기 노력도 다양해지고 있다. 음악으로 제주어를 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온새미회(회장 김문영)와 양정원·양전형(시인)씨가 대표적이다. 지역 방송들도 거들고 있다. 제주CBS는 매주 한 번 노래로 제주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고 KBS·MBC도 프로그램 중에 ‘제주어 배우기’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어 전문 극단도 만들어졌다. 제주어보전회 서귀포지회(지회장 강창익)는 ‘제주어 연극단’을 만들고 오는 9월 정의골(성읍민속마을)에서 열리는 한마당축제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연습을 하고 있다. 단원 중 한 명인 유재희씨(소리샘 국악원장)는 “제주어를 듣고 자랐지만 막상 제주어로 된 대본을 받아보니 처음 보는 단어들이 많았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대본 외우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강창익 지회장은 “9월 공연 이후 상설화하는 것이 목표다”고 밝혔다.
노인이 죽는 것은 서재가 불타는 것
아프리카의 대표작가 아마도우 함파텔 바(1901~1991)는 유네스코 연설에서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제주에서도 지금 매일 서재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취재 중에 만난 사람들은 단지 언어가 아니라 제주어에 담긴 제주만의 정서, 전통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살리지 못하면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어연극단의 대본을 쓴 오창순씨는 “오름 이름만 해도 대부분 제주어이다. 다랑시오름은 ‘높다’는 뜻이고 오름은 여자의 살갗을 뜻한다. 제주어를 알지 못하면 오름의 이름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말했다.
매달 한 번씩 녹음기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제주어 녹취를 하고 있는 허성수 이사장은 “세대가 젊어질수록 제주어도 많이 변질되고 사용하는 어휘도 많이 줄었다. 70년을 제주도에서 살았지만 90대 노인이 하는 말은 나도 못 알아듣는 게 많다. 그들이 가고 나면 누가 제주의 혼과 전통을 전해주겠는가. 녹취를 하면서도 마음이 바쁘다”고 했다.
허 이사장은 제주어를 많이 사용했다. 취재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 취재하는 도중 몇 번이고 말뜻을 물어보고 확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들어도 옮겨 적기 어려운 말들이 많았다. 허 이사장은 “제주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줄 아느냐. 멋진 건배사를 가르쳐 줄 테니 써먹으라”면서 수첩에 적어줬다.
“느 울엉, 나 울엉, 울엉.”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모두를 위하여”란 뜻이다. 특히 아래아 발음이 중요하다. 아래아 발음을 보면 제주도 사람인지 외지인인지 알 수 있단다.
‘오월 장만 꾸어당이라도 꼬기 뎅
는 디 잇날 사름덜은 으레이 음력 오월은 마치는
로 간주
여 불어서마씨. 어떵
당 비가 하영 오지 안
땐
른 장마 들엇덴
여십주. 벨방 소낭 하영 잇인 소낭굴에서 두린때 살아난 정자 아지망
은 말 도시리커메 들어봅서.’
허성수 제주어보전회 이사장이 매주 제주 KBS라디오에서 하는 제주어 방송을 위한 원고 중 일부이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제주어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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